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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지붕 위의 식사/이근화

 

 

지붕 위의 식사 - 이근화

 

 

나는 나인 듯

어느 맑게 개인 날에

시금치를 삶고

북어를 찢는다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어느 맑은 날에는,

 

낮잠을 자고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나는 또 나인 듯이

외출을 한다

 

나는 나에게 다 이른 것처럼

클랙슨을 울리고

정말 나인 것처럼

상스럽게 중얼거린다

 

국부적으로 내리는 비,

어느 날엔가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빗방울은 말없이 떨어진다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손등을 어깨를 훔쳐본다

나는 나에게 이르러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내가 갈 수 없는 곳들의 지명을

단숨에 불러본다

내가 나에게 이른 것처럼

마치 그런 것처럼

 

 

이근화 시인

저자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정지용 시 연구'로 석사 학위를, '1930년대 시에 나타난 식민지 조선어의 위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에게 시론과 시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칸트의 동물원'(2006), '우리들의 진화'(2009), '차가운 잠'(2012) 등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윤동주문학상 젊은작가상(2009), 김준성문학상(2010), 시와세계 작품상(2011)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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