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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노동의 새벽/박노해

나는 박노해님은  결이 곧고 적극적인 행동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글이기에

다시 한번 읽으며 얼핏 노동자의 넋두리와 한을 펄럭이며 항거하는 깃발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하늘소망-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도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1984)-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참여적, 의지적

◆ 특성

①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시상을 전개함.

② 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 화자의 정서를 강조함.

③ 어두운 느낌의 시어를 많이 사용하여 부정적인 현실을 표현함.

④ 노동자의 관점에서 본 절망적인 노동 현실을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전쟁 같은 밤일 → 극한의 노동 현실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힘든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마시는 술

* 이러다간 ~ 끝내 못 가지

→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는 오랜 시간 삶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과

위기의식의 표현

* 설은 세 그릇 짬밥 → 턱없이 보잘것없는 보상

*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 노동력을 착취하는 가혹한 노동 현실

* 오래 못 가지 ~ 어쩔 수 없지 → 가혹한 노동 현실 속에서 오래 일하기도 어렵지만,

그만두려 해도 생존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체념하고 마는 비참한 노동자의 삶이

잘 드러남.

* 탈출할 수만 있다면 ~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 비참한 노동현실로부터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은 노동자의 바람

* 어쩔 수 없지 ~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 반복을 통해 음악성을 형성함.

죽기 전에는 이 비참한 노동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상황

* 이 질긴 목숨을 ~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 비참한 노동 현실에서 벗어나려 해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의 삶에 대한 체념적 태도

*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 → 변함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노동자의 삶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뒤에 이어지는 시구를 통해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음.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 고통스럽고 비참한 현실을 바꾸려는 개혁의지, 대결의지

* 차거운 소주잔을 /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 노동 해방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 노동자의 햇새벽 →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희망찬 노동자의 미래

◆ 화자 : 노동자

◆ 주제 : 열악한 노동 현실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희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힘든 노동으로 인한 생존의 위기의식

◆ 2연 :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체념

◆ 3연 : 힘든 노동자로서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체념

◆ 4연 :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한 분노

◆ 5연 :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던 박노해(본명 박기평, 1958년 전남 고흥 태생, 선리상고 졸업)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시인이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의 약자인 '박노해'를 그의 필명으로 삼은 그는 노동운동사상 '전태일' 이후 노동자의 대표적 상징체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독자층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1980년대 노동문학, 혹은 노동자 문학의 활성화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후 소위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9년 결성된 세칭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 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복역하였으며, 옥중에서 쓴 작품들을 모아 1993년 『참된 시작』을 출간하였다.

 

『노동의 새벽』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다. '현장적 구체성',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상화 능력' 등의 말로 칭송받았던 이 시집의 작품들은 지식인의 관념이 아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의 일상적 삶이 노동자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의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인 이 시는 5연 40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의미상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연으로 철야 작업을 끝내고 나서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라고 위기를 느끼는 발단 부분이다. 둘째 단락인 2, 3연은 화자의 서로 상반되는 자세가 나타나는 전개 부분이다. 즉, 2연은 '오래 못 가도 /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나타내며, 3연은 '진이 빠진 / 스물 아홉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운명을 어쩔 수 없다'는 갈등이 상반되어 나타난다. 셋째 단락인 4연에서는 '차거운 소주잔을 붓는' 행동이 '분노와 슬픔을 붓는' 행동으로 바뀌는 전환 부분이다. '슬픔'은 앞에서 나타났던 갈등의 연속이라면, '분노'는 체념을 넘어서는 힘이 된다. 넷째 단락인 5연은 절정과 화해를 이루는 부분으로, 4연에서의 분노의 힘이 더욱 확산되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로 퍼져 나간다. 절망은 사라지고 그대신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 '노동의 새벽'에서 '노동'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의미하며, '새벽'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지피려는 결연한 의지와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고통과 초월이라는 대립 구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단순한 대립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갈등과 전환은 '절망의 벽'으로 제시된 노동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절실히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출처 : 노동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연구, 수풀넷

 

◆ 1980년대 노동문학의 형성 배경

80년대 노동문학은 무엇보다도 6, 70년대의 민족문학이 성취한 현실주의적 방법과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황석영의 「객지」가 있었고, 조세희의「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연작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80년대 노동문학의 또 하나의 연원은 70년대 중반 이후 나오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이다. 농민의 아들 딸이 공장의 '공순이', '공돌이'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삶을 슬픔과 분노로써 기록한 일련의 수기들이 있었고, 또 시의 형식을 빌려서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기록한 시적 성과들도 있었다. 석정남, 유동우, 정명자 등의 글쓰기가 그것들이다. 이런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는 비록 자기 계급의 역사적 운명을 총체적으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삶과 분노와 싸움을 자신의 손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는 80년대 초반의 '공동체문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발전하였고, 문학의 생산과 수용에서 소외되지 않은 새로운 소통 형식의 가능성까지도 점칠 수 있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문 운동인 문화운동의 한 형태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본격적인 노동문학은 한편으로는 이전의 민족문학적 성과를,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

 

[작가소개]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朴基平), 1957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 사진가, 노동·생태·평화운동가이다.

 

<생애>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일찍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독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이 한 권의 시집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분단 이후 공산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침묵을 하며,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 (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7년 『촛불혁명-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감수)를 출간했다. 2019년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하루』,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길』을 출간했다. 2020년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를 출간했다. 2021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7년간 연재해온 사진과 글을 모아 에세이 『걷는 독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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