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변신』과 『심판』(혹은 『소송』)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프라하의 유대인들은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체코인으로도 독일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카프카 자신은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유대인 공동체에서조차 주변인이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자주 분노를 쏟아붓고 아들이 문학 속으로 도피하는 것을 경멸했다. 카프카는 매사에 군림하려 드는 아버지와 많은 갈등을 겪었으며, 신경증과 사회 불안 장애에 시달렸다. 한 인간의 내면을 한두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며 무엇이 그의 삶을 뒤흔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카프카는 젊은 시절부터 불안과 절망에 사로잡혀 약혼과 파혼을 반복했을 뿐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폐결핵을 앓던 카프카는 요양을 겸해 독일 베를린에서 지냈다. 어느 날, 그는 베를린 근교의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슬프게 울면서 망연자실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소녀와 함께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나무 밑과 풀숲 어디에도 인형은 보이지 않았다. 카프카는 소녀에게 내일 그곳에서 만나 다시 찾아 보자고 달랬다.
다음 날도 인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망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소녀를 위로하며 카프카는 말했다.
“사실 너의 인형은 여행을 떠났어.”
소녀가 놀라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카프카는 말했다.
“인형이 너에게 전해 달라며 편지를 보냈어.”
소녀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 편지를 가지고 있느냐는 소녀의 질문에 카프카가 대답했다.
“미안해, 지금은 나에게 없어. 깜박 잊고 집에 놓고 왔어. 내일 꼭 가지고 올게.”
소녀는 눈물을 매단 채 카프카를 바라보았다. 의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에 카프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녀와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카프카는 곧바로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인형 대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백지 위에 몸을 기울인 카프카의 자세는 작품을 쓸 때처럼 진지함 그 자체였다. 그는 이 일을 놀라울 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였고, 여자아이를 결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진실하게 쓰면 소녀의 상실감을 다른 차원의 상상으로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글을 쓸 때 세상의 모든 작가는 이 믿음을 잊지 않는다.
다음 날 카프카가 편지를 들고 공원으로 가자, 소녀는 약속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카프카가 그 인형의 편지를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인형은 자신이 왜 사라졌는지 소녀에게 이유를 말했다.
‘울지 마. 나는 슬픈 이유로 사라진 것이 아니야. 잠시 지금의 장소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어.’
그리고 인형은 소녀에게 자신의 모험에 대해 날마다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식으로 둘의 만남은 몇 주 동안 이어졌고, 인형은 카프카라는 작가의 마음을 빌어 자신이 경험하는 나날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해 나갔다.
카프카는 우체부 역할을 하며 하루도 빠짐 없이 공원으로 가서 소녀에게 인형의 편지를 읽어 주었다. 편지를 거듭하다 보니 인형의 자아도 점차 성장해 나갔고, 학교에도 다니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며칠 후 소녀는 인형을 정말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었으며, 그 대신 카프카가 들려주는 상상 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 몰입이 그녀의 마음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꿔 놓았다. 인형의 모험이 담긴 세세한 편지들은 카프카에게 작품을 쓸 때만큼이나 진정 어린 글쓰기 그 자체였다. 아이를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허구의 이야기가 진실한 울림을 통해 현실의 생동감 넘치는 일로 바뀌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났을 때 소녀의 슬픔은 완전히 치유되었다.
마지막 날 카프카는 마침내 베를린으로 돌아온 인형(실제로는 카프카가 소녀를 위해 산 마지막 선물)을 손에 들고 소녀 앞에 나타났다.
소녀가 놀라며 말했다.
“내 인형과 전혀 안 닮았어요.”
카프카는 소녀에게 인형이 쓴 또 다른 편지를 건넸다.
‘내 여행이 나를 변화시켰어.’
어린 소녀는 행복하게 새 인형을 껴안고 집으로 데려갔다. 카프카는 인형의 인격으로 소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그녀가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라고 알리면서 다음의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너도 이해할 거야.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없으면 그때는 마음에서 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몇 달 후 카프카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여러 해가 지나 어른이 된 소녀는 인형 속에서 카프카의 서명이 적힌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네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돌아올 거야.’
이 일화는 세계 문학사에서 인간 운명의 부조리와 존재의 불안을 가장 깊이 파헤친, 열에 들뜬 고독과 과민한 신경을 안고 지낸 작가가 보여 준 친절의 행위이다. 그것도 결핵에 시달리던 만년에 처음 만난 소녀의 슬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쏟아 마법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민한 작가로서 고독한 창작에 몰두하는 것 못지않게 다른 인간과 연결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비록 상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슬픔은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에 의해 치유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으로 베를린에서 동거했고, 날마다 그 공원을 함께 산책한 도라 디아만트가 『프란츠 카프카와의 생활』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도라는 섬세한 카프카가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했고, 폴 오스터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우리의 삶은 잊을 수 없는 만남을 몇 번이나 경험하고 마음이 움직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상실의 아픔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존재적 만남을 통해 더 가능하다. 삶을 꽃피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꽃을 피우는 일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이 꽃 피어나도록 돕는 일이다. 당신도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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