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마이 데몬> (上)
마귀, 그리고 그 마귀에게 영혼을 판 이들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드라마, <마이 데몬>.
마귀를 구원자로, 과감한 개념 역전
기독교적 요소, 피상적·가볍게 다뤄
죄성과 욕망 고찰 노력 거의 안 보여
벌써 시청률 급감 이유, 깊이 없어서
11월 24일부터 방영 중인, 송강(정구원 역)·김유정(도도희 역) 주연 SBS 금토 드라마 <마이 데몬>은 이 땅에서 암약하는 마귀와 그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 사이의 이야기를 중심 서사로 삼는다. 마귀에게 영혼을 파는 이들의 줄거리가 이어지지만 진지하거나 무거운 느낌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의 전체 분위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마귀와 계약해 현세에서 큰 이익과 쾌락을 얻는 대신, 영혼이 파멸을 맞는다는 줄거리는 근대로부터 여러 작품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중세 가톨릭 교리와 유럽 혹은 중동 각 지역 민간신앙, 미심, 민담, 설화 등이 합쳐진 데서 유래된 것이다.
근대 후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1808)와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1) 등에 의해 확고한 서사의 구조를 갖추었다. 이때 확립된 서사 구조는 이후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여러 차례 변형돼 활용됐다.
가까운 예로는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1997), <콘스탄틴>(2005). 드라마 <루시퍼>(2016-2021) 등을 지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마이 데몬>이 마귀를 직접 거론하고 등장시킨 첫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과거 국내 드라마에서 도깨비나 귀신은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지만, 마귀가 직접 등장해 인간을 홀리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작품은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 해서 이 작품의 서사나 설정에 특별히 독창적이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흥행에 유리한 설정과 서사 요소만 족집게 식으로 골라내 혼합했기 때문에, 실상 진부하기 그지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드라마 <루시퍼>의 핵심 설정(남자 주인공이자 마귀인 정구원의 능력이 여주인공 도도희에게만 통하지 않고, 이로 말미암아 두 사람이 끊기 힘든 관계로 얽힘)을 가져와 극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표절작에서 느낄 수 있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시감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마이 데몬>이 <데블스 애드버킷>이나 <콘스탄틴>, <루시퍼> 등과 다른 점은 드라마 설정 및 서사 전반에 한국 여성들의 욕망이 집약적으로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이긴 하지만, 작품 여자 주인공 도도희(김유정 분)는 재벌가의 일원이면서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능력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며, 남자 주인공 정구원(송강 분)의 마음을 홀릴 정도의 여성적 매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악의를 가진 주변인들의 음해와 공격에도 쉽게 굴하지 않는 강인함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한국 여성들이 갖추고자 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게다가 이 완벽한 조건의 여주인공과 함께하는 남자 주인공 역시 곱상함과 강인함, 도도함과 상냥함, 허당끼와 능력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이 데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이런 식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해당 드라마의 주 소비층을 철저하게 한국의(혹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의) 젊은 여성 시청자로 타게팅했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당당하고 자유로운 미남 미녀 캐릭터를 등장시켜 시청자의 허영 어린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방식은 이미 20년 넘게 지속된 한국 드라마의 진부한 서사 공식으로 특별히 새롭다 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마이 데몬>은 이런 서사 공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귀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형상과 개념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특히 차용한 기독교 개념들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비틀고 뒤섞는 데 있어 상당한 과감성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마귀와 관련된 미국 영화나 드라마들 대부분은 성경적 개념을 차용하면서, 그 기본 의미를 과도하게 비틀지 않는다. 마귀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악하게 그려지며, 마귀와 함께하는 이의 삶에 참된 구원이 존재하지 않고 음습함이 가득한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마이 데몬>에 등장하는 마귀 정구원에게서는 특별히 악의나 음습함이나 위험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구원이 계약으로 지옥에 보내는 이들은 원래 망할 만한 악인들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구원은 엄밀히 말해 마귀라기보다 저승사자에 가깝다. 속으로는 선하지만 겉으로는 ‘쿨하게’ 악한 캐릭터일 뿐이다. 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나쁜 남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구원은 재벌가 암투 속에서 무고하게 살해될 위기에 처한 여자 주인공 도도희를 보호하고 살려주는 역할을 지속하기 때문에, <마이 데몬>이라는 작품 속에서는 분명하게 선역으로 분류된다. 이는 이 캐릭터 이름이 ‘정구원’이라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 캐릭터의 원래 정체는 마귀지만, 여자 주인공 도도희 편에서는(그리고 도도희에게 감정이입하는 여성 시청자들 편에서는) 삶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구원’으로 인식된다.
미국도 세속화로 인해 무종교 인구가 급증하고 교회의 문화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 있지만, 워낙 문화 자체가 오랫동안 기독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형성·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대중문화 콘텐츠라도 기독교의 핵심 요소나 개념을 과도하게 비틀면 해당 콘텐츠 소비자에게 문화적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사탄주의를 표방하는 메탈 음악 등이 미국 음악 시장에서 잠시 인기를 얻기는 하지만 그 인기가 오래가지 못하고 마이너 영역에 머무르는 것도 그에 대한 원초적인 문화적 반감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통적인 정신문화 유산이 주로 유교, 불교, 도교 등에 기원을 두고 있는 데다, 기독교 선교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에 대중문화 콘텐츠 소비자들이 기독교적 요소나 개념을 왜곡하는 행태에 대해 원초적인 반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마이 데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독교적 삶과 신앙, 성경적 개념에 대한 왜곡이 비교적 자유롭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의 문화적 영향력과 역량이 크게 축소되는 상황에서 이런 경향은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마이 데몬>이 구원이나 마귀 등 기독교적 요소를 다루는 방식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가볍다. 미국의 마귀 관련 영화나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죄성과 욕망에 대한 고찰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고, 여성 시청자들의 허영 어린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캐릭터 구축에만 주력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재벌의 삶을 주로 조명해 드라마 분위기를 화려하고 세련된 것처럼 치장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말초적이고 천박한 욕망을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이 데몬>은 기독교적 개념을 자의적으로 기괴하게 비틀어놓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 드라마가 아직 연재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회차가 진행될수록 시청률이 급감하는 데는 이렇게 사고의 깊이가 없다는 점이 하나의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설정이나 서사의 참신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 <마이 데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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