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 신용목
학미산 다녀온 뒤 내려놓지 못한 가시 하나가
발목 부근에 우물을 팠다
찌르면 심장까지 닿을 것 같은
사람에겐 어디를 찔러도 닿게 되는 아픔이 있다
사방 돋아난 가시는 그래서 언제나 중심을 향한다
조금만 건드려도 환해지는 아픔이 물컹한 숨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가
서둘러 혀를 데인 홍단풍처럼 또한 둘레는 꽃잎처럼 붉다
헤집을 때마다 목구멍에 닿는 바닥
눈 없는 마음이 헤어 못 날 깊이로 자진하는 밤은
문자보다 밝다 발목으로는 설 수 없는 길
별은 아니나 별빛을 삼켰으므로
사람은 아니나 사랑을 가졌으므로
갈피 없는 산책이 까만 바람에 찔려
死火山 헛된 높이에서 방목되는 햇살
그 투명한 입술이 들이켜는 분화구의 깊이처럼
허술한 세월이 삿된 뼈를 씻는 우물
온몸의 피가 회오리쳐 빨려드는 사방의 중심으로
잠결인 듯 파고드는 봄 얼마간
내 아픔은 뜨겁던 것들의 목마름에 바쳐져 있다
시 감상/하늘소망
상처는 한 때 환하고 붉다.
그러나 그 상처가 오래되면 우물처럼 깊어지고 말개진다
그리고 세월 지나 갈증에 치인 아픔이 된다.
이 시에서 유독 내 눈을 끌었던
별은 아니나 별빛을 삼켰으므로
사람은 아니나 사랑을 가졌으므로
갈피 없는 산책이 까만 바람에 찔려
이 싯귀절에 문득 '방황'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물처럼 맑은 영혼에 어린 삶의 고뇌와 순한 언어에 되돌아오는 불화살!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나?
가슴에 판 우물가에 서서
나 또한 긴 숨을 들이쉰다
1974년 8월 23일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군암리 용전마을에서 아버지 신인범(愼仁範, 1940. 12. 15 ~ )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인순(李仁順, 1945. 2. 8 ~ )사이에서 4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거창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2005년 7월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 2012년 12월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2017 / 제19회 백석문학상
2017 / 제18회 현대시작품상
2015 / 제14회 노작문학상
2008 / 제2회 시작문학상
2008 / 제5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2000 / 작가세계 신인상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창비, 2007)
<아무 날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12)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 2017)
<나의 끝 거창>(현대문학, 2019)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문학동네, 2021)
<재> (난다, 2021)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난다, 2016)
<비로 만든 사람>(난다, 2023)
'오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화상/윤동주 (0) | 2024.02.06 |
---|---|
사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하승무 (0) | 2024.01.30 |
당신의 사랑 앞에/박두진 (2) | 2024.01.23 |
눈물/김현승 (1) | 2024.01.19 |
방문객/정현종 (0) | 2024.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