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은 기독교 정신으로 시를 썼다. 그러나 그는 이 기독교 유일 사상의 정신과 동양 범신론적 자연 사상을 잘 융합해 시로 표현해낸 시인이다. 이 시 또한 기독교적인 사랑의 고뇌와 희열을 읊은 작품. 주제는 고뇌스런 인간(죄인)의 신앙 자각에 대한 감격과 희열이다. 당신(주)의 인도만 받는다면 피눈물나는 고생도 오히려 화려한 영광이다. 미친 발광조차 감격스러운 희열이다.
조지훈, 박목월과 같이 청록파의 한 사람인 혜산 박두진의 3·4·5조의 우리말 민요조는 늘 가슴을 울린다. 이 시도 전반적으로 3·4(7)·5조로 직조되어 있다. 소리에 거슬리지 않아서 늘 그의 표현은 감동적이다. (신세훈 시 해설)
시 감상/하늘소망
이 시를 읽다보면 하나님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박두진 시인의 기독교 정신이 넘쳐나는 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적으로는 해방의 기쁨과 희망을 노래한 시지만 자연을 소재로 절망감으로부터의 탈출과 함께 시인이 그리는
이상 세계를 노래한 것이라 본다.
오늘은 이 시를 읽으며 내 마음에 솟는 붉고 둥근해를 바라본다
-해설- 1946년에 발표된 이 ‘해’가, 해방을 염원하던 해든 해방의 기쁨을 담은 해든, 솟지 않는 해를 향한 촉구든 솟고 있는 해를 향한 경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 해가 여전히, 지금-여기에서, 이글이글 솟구치고 훨훨훨 분방하고 워어이 워어이 불러모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막 솟는 해처럼, 말의 되풀이는 힘차고 뜻의 개진은 꿋꿋하다. 언어가 어떻게 되풀이되고, 그 되풀이가 어떻게 노래가 되고 주술에 가까워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씻고’ ‘살라먹는’, 그 세례와 정화에 의해 날마다 생생(生生)하게 새로 뜨는 해. 그 해 아래 시를 살(生)고, 사는(生) 시를 꿈꿔 보는 새벽이다. 삶 속에서 이글이글 솟아나는 예의 그 생생지락(生生之樂)과, 시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시시지락(詩詩之樂)을 꿈꿔 보는 아침이다. 미움과 갈등의 시간을 버리고 강자와 약자가 워어이 워어이 더불어 상생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보는 새해다.
우리는 이제 달밤에 벌어진 상처,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일어난 죄악을 (불)살라 태우고 ‘앳된 얼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새해야 부디 ‘늬’도 그렇게 솟아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든 희망아, ‘늬’도 꼭 그렇게 고운 해처럼 오라. 삼백예순 날의 삶아, ‘앳되고 고운 날’들아, ‘늬’들도 꼭 그렇게만 좋아라. 백년의 백년 내내 낙희낙희(樂喜樂喜)하고 럭키럭키(lucky lucky)하게! <출처> 2008. 1. 1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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