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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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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김초양 연서/김초양 하얀 눈발이 냉쾌冷快하게 날리는 깊은 밤입니다 연연戀戀한 아픔으로 기어코 상심의 붓을 들었습니다 미명의 새벽마다 당신을 향한 발걸음 통회하는 내면의 이슬 묻은 고백에 왜 잠잠히 계시는지요? 당신에 대한 열망과 충만으로 절규하면서 공막空漠이 나의 전의식을 휩싸고 있습니다 당신의 호흡에 영혼은 젖어들었고 육신의 세포는 살아 뛰었습니다 내 영혼을 성형하고 영골靈骨을 교정시키시고 세상에서 나를 분재시킨 임이시여! 당신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무시는데 나 혼자만 늘- 허기진 외로움에 갈증을 느낍니다 당신에 대한 충실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슬픔과 고통에도 은총이 깃든다고 하였으니 관념의 행로에서 돌아보아 주십시오 사흘 밤 사흘 낮 철철 눈물 쏟던 막달라처럼 소녀도 그렇게, 그렇게 울게 하여 주십시오 선혈..
고난기에 사는 친구들에게/헤르만 헤세 고난기에 사는 친구들에게/헤르만 헤세(1877∼1962) 사랑하는 벗들이여, 암담한 시기이지만 나의 말을 들어주어라 인생이 기쁘든 슬프든, 나는 인생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햇빛과 폭풍우는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불과한 것 운명은, 즐겁든 괴롭든 훌륭한 나의 식량으로 쓰여져야 한다. 굽이진 오솔길을 영혼은 걷는다. 그의 말을 읽는 것을 배우라! 오늘 괴로움인 것을, 그는 내일이면 은총이라고 찬양한다. 어설픈 것만이 죽어간다. 다른 것들에게는 신성(神性)을 가르쳐야지. 낮은 곳에서나 높은 곳에서나 영혼이 깃든 마음을 기르는 그 최후의 단계에 다다르면, 비로소 우리들은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으리. 거기서 우리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을 것이리라.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김소엽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김소엽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새해의 기도/이성선
노동의 새벽/박노해 나는 박노해님은 결이 곧고 적극적인 행동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글이기에 다시 한번 읽으며 얼핏 노동자의 넋두리와 한을 펄럭이며 항거하는 깃발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하늘소망-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
개안
지붕 위의 식사/이근화 지붕 위의 식사 - 이근화 나는 나인 듯 어느 맑게 개인 날에 시금치를 삶고 북어를 찢는다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어느 맑은 날에는, 낮잠을 자고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나는 또 나인 듯이 외출을 한다 나는 나에게 다 이른 것처럼 클랙슨을 울리고 정말 나인 것처럼 상스럽게 중얼거린다 국부적으로 내리는 비, 어느 날엔가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빗방울은 말없이 떨어진다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손등을 어깨를 훔쳐본다 나는 나에게 이르러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내가 갈 수 없는 곳들의 지명을 단숨에 불러본다 내가 나에게 이른 것처럼 마치 그런 것처럼 저자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정지용 시 연구'로 ..
자화상/윤동주
사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하승무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역사신학자이다. 하승무는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적 성향의 신학자이나 문학적으로는 진보적인 참여시인이다. 필명이자 호는 란사(蘭史)이다. 1994년 한겨레문학에서 박재삼 시인 외 2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인의 대표시 〈호모 사피엔스의 기억〉, 한겨레문학. 〈고백〉, 한겨레문학, 1994년. 〈흔들리는 행성〉, 국제신문, 1996년. 〈바람〉, 부산매일, 1996년 8월 18일. 〈빛과 수인〉, 《게릴라》 1998년 가을호. 〈이 도시가 슬프다〉, 《게릴라》 1998년 가을호. 〈태양에 땀이 난다〉, 《주변인의 시》 1999년 가을호. 〈이 도시의 슬픔과 어둠〉, 《부산시인》 1998년 75호. 〈신생대의 여섯 번째 꼬리뼈〉, 《주변인의 시》 1999. 가을호. 〈..
우물/신용목 우물 / 신용목 학미산 다녀온 뒤 내려놓지 못한 가시 하나가 발목 부근에 우물을 팠다 찌르면 심장까지 닿을 것 같은 사람에겐 어디를 찔러도 닿게 되는 아픔이 있다 사방 돋아난 가시는 그래서 언제나 중심을 향한다 조금만 건드려도 환해지는 아픔이 물컹한 숨을 여기까지 끌고 왔던가 서둘러 혀를 데인 홍단풍처럼 또한 둘레는 꽃잎처럼 붉다 헤집을 때마다 목구멍에 닿는 바닥 눈 없는 마음이 헤어 못 날 깊이로 자진하는 밤은 문자보다 밝다 발목으로는 설 수 없는 길 별은 아니나 별빛을 삼켰으므로 사람은 아니나 사랑을 가졌으므로 갈피 없는 산책이 까만 바람에 찔려 死火山 헛된 높이에서 방목되는 햇살 그 투명한 입술이 들이켜는 분화구의 깊이처럼 허술한 세월이 삿된 뼈를 씻는 우물 온몸의 피가 회오리쳐 빨려드는 사방의 중..